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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에선 과학혁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과학은 군사-산업 복합체와 연동되어 커왔다. 더 포괄적으로는 정치, 경제, 종교와 맞물리며 발전해왔다. 정치, 경제, 종교적 사건 없이, 이와 관련된 대립 혹은 목표 없이 과학이 발전해 왔을거라고 믿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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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틸은 Zero to One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현대의 사람들은 기술의 발전에 있어 낙관적이라 자기들이 어떻게 되었든 과학과 기술은 발전을 해서 자신들에게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통찰이 있는 후에야 기술은 마침내 발전한다. 그것도 피터틸의 책처럼 0에서 1을 만드는 일은 아주 여러 결과들 중에 하나에 불과할만큼 사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아주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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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의 논문이 나왔다. 20세기에 비해 21세기 현재 나온 논문들의 일명 ‘파괴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혁신적인 성과보다 안정적인 성과를 우선 시하고 있어 혁신적인 발견이 이전보다 적다는 내용이다. 일론 머스크도 일반 사람들은 과학 기술 발전에 너무 낙관적이라며 성과를 내려면 상상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과학과 기술은 역시 긴박한 지정학적인 사태 혹은 자연재해가 없는 이상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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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21세기는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에 평화로운 지구촌 그 자체였다. 몇몇 소요 사태들이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넘어가는 듯 했다.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적인 발견들이 나오긴 했지만 양자역학이나 상대성 이론에 비하면 그리 파괴적인 것 같지 않았다. 딥러닝 분야에서의 파괴적인 혁신은 최근에서야 실감되고 있다. 아무래도 21세기의 패러다임인 낙관성, 평화 이런 것들이 과학과 기술 발전을 이끌던 엔진에 브레이크를 낸 것이 아닌가 싶다. 20세기말에 미국은 소련과의 경쟁을 통해 달에 사람을 보냈고 1945년 때보다 더 강한 핵폭탄을 만들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그 전엔 보지도 못했던 스텔스 전투기를 보냈으며 웬만한 포탄과 탄창으로는 뚫을 수 없는 신소재 코팅이 된 기갑전차를 선보였다. 지금은 이런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평화라는 패러다임과 동기화되어 과학 발전이 더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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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기는 어떨까? 평화의 종식이 눈 앞에 있다는 심리가 도처에서 올라오고 있다. 2020년 코로나를 겪었다. 2022년 ‘신냉전’이라는 사실 상의 동서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격상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엔진이 다시 한 번 시동을 켤 때가 되었다. 때 마침 전세계가 군사 기술에 다시 투자를 하기 시작한다. 중국과 미국의 과학 기술 경쟁이 심화되었다. 서로 달에 먼저 깃발을 꽂으려 한다. 누가 핵융합 발전소를 몇 초 더 돌렸나로 경쟁한다. 양자컴퓨터 기술을 빨리 상용화해 상대의 IT망을 박살내려 한다. AI 기술을 빨리 고도화해 온 산업에 사용하고자 한다. 과학과 기술 발전의 엔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